가슴속 두꺼운 얼음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광주 돈보스코학교에 다니는 전아무개(17·고1)군은 지난달 17일 저녁 학교에서 고 이태석 신부(1962~2010)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를 봤다. 의사이기도 했던 이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오지 마을 톤즈에서 10년 동안 의료·교육 봉사활동을 하다 지난 1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할 처지에서 장기 위탁 대안교육기관인 이 학교에 온 전교생 40여명과 교사 8명은 다큐를 보고 큰 감동을 얻어 ‘사랑의 국토순례’에 나섰다.
“처음엔 ‘왜 걸어야 하나’ 하고 조금 짜증도 났어요. 하지만 걸을 때마다 후원금이 쌓여 남을 돕는다는 생각에 점점 괜찮아졌어요.” 지난달 18일부터 4박5일 동안 전남 해남 땅끝에서 출발해 광주까지 127.1㎞를 걸었다(사진). 학생들은 1㎞를 걸을 때마다 50원씩을, 교사는 100원씩을 각각 적립해 톤즈를 돕기로 했다. 전군은 “5000원이면 그곳 아이들에겐 6개월 학비라고 해 놀랐다”며 “처음으로 남을 위해 6355원을 내고 나니 마음이 개운했다”고 말했다.
돈보스코학교는 지난 1일 한국 천주교 살레시오회에다 학생·교사가 모은 382만5325원을 수단 톤즈 학교 건축기금으로 전달했다.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뒤늦게 광주 살레시오신학대에 입학했던 이 신부가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톤즈로 달려가 건립한 학교 이름도 돈보스코 중·고등학교였다.
한문노(49) 돈보스코학교 교장은 2일 “고인의 불꽃같은 삶과 죽음을 다큐로 본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으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울지 마 톤즈>는 지난 8월 중순 개봉 이후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난달 중순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신부를 후원하는 수단어린이장학회(이사장 이재현) 회원도 늘고 있고, 후원금 마련 전시회도 열리는 등 잔잔한 울림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광주 돈보스코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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