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라는 책이요.
재미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알게 해주고, 그래서 또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더군요.
역시 중국은 대단한 나라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전부터 저는 세상에서 중국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히틀러 시대의 독일사람들도 무섭고
아프리카에서 소년병을 사냥하는 인간 도살자들도 무섭고
유관순을 고문하던 일본넘들도 무섭지만 그보다 …. 뭐랄까…
중국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더라고요.
사람이 상상만 해도 어지러운 일들을 태연히 저질러버리고
또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는 섬찟함?.
인구가 많아서 그럴까, 역사가 길어서 그럴까, 여러 가지 의문이었는데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라도 알 것도 같더군요.
위화는 열개의 단어로 중국을 이야기하다, 라는 부제로 이 책을 썼는데 과연!
이 책은 현재 중국의 상황과, 그 상황이 왜 빚어진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그 열 개의 단어가 무엇인지,
한 권의 책으로 어떻게 중국의 현재를 설명하는지는 쓰지 않겠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터!
꼭 읽어보십사 하고 권하고 싶기에 약간이라도 냄새를 풍기자면
위화는 문화 대혁명 시기에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시기를 겪어 낸 사람들이 살아남아 오늘날 중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죄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문화 대혁명이 무엇이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데? 라고 물으시는 분들,
이 책을 꼭 읽어 보시라니까요. ㅎㅎㅎ
착잡한 심정으로 이 책을 넘기며
머리 속으로 위화와 함께 문화 대혁명 시기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위화의 형은 ‘타고난 혁명 전사’로 그 혁명적 자질을 아낌없이 보여줬던 에피소드 하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위화의 형은 교실에서 개망나니로 굴었답니다.
참다 못한 선생님이 주의를 주자
이 되바라진 혁명적 기질의 전사는 책상을 번쩍 들고 나와
선생님 앞에 턱! 하고 놓더니 그 위로 휙! 올라갔다는군요.
이 녀석이 뭘 하나 할 사이도 없이 두 주먹을 번쩍 들어 선생님의 정수리를 강타!
선생님을 기절하게 만들었다는…. ㅠㅠㅠㅠ
당시의 모범학생이란 이런 것이었어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이 판서를 하며 설명을 하지만 단 한명도 듣는 아이가 없었대요.
모두들 제멋대로 까불고 떠들고 난장판을 치다가
가끔 선생님을 향해 분필 쪼가리나 뭐 그런 것을 던지고,
그러면 선생님은 슬쩍 피하면서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수업을 혼자 진행하는 교실.
고등학교 시절은 또 어땠냐 하면,
선생님들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올리는 학생 동아리가 우후죽순.
거기서 위화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는 리더.
그러나 자신이 나름 존경하던 선생님을 빼고 비판했더니 그 선생님이 남몰래 애걸을 했대요.
그 동아리의 주필(?)이던 위화에게 제발 나를 넣어 달라고,
담배 두 갑을 쥐어주며 남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비판해달라고 말이죠.
현재 중국을 만든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시대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두렵겠어요!
하여간, 위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치과 의사(?)가 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그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간 사람은 은퇴하여 농민들의 이를 뽑고 있던 송 사부.
송사부의 ‘의료행위, 란
환자가 찾아오면 그는 알코올 솜으로 입을 한번 닦아 줍니다.
그리고 마취를 시키고는,
그리고 담배 한대 피운 후, 묻는답니다.
“혀가 커졌는가?”
커졌다면 마취가 된 것으로 보고 이를 뽑아 내면 끝.
이걸 두 번 보여주더니 위화에게 이랬대요.
“이번 환자부터 네가 해”
세상에서 가장 볼 것 없는 사람의 입 속을 들여다 보며 중노동에 시달리던 위화.
그는 유유자적 거리를 돌아다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럽기 짝이 없었죠.
그들은 문화 생활에 관련된 직업을 배당 받은 팔자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위화는 저렇게 자유로운 시간을 얻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글을 썼답니다.
글을 써서 인정을 받아야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배당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문학의 길이었는데
초기 위화의 작품을 보면 온통 피와 죽음, 고통에 대한 글들로 가득했습니다.
자라면서 보고 들은 내용들이 다 그런 내용들이었으니까…
이런 글을 써대며 영혼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 위화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그리고 위화는 문학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위화가 발견한 참된 의미란 뭘까요?
그게 바로 제가 이 글을 쓰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색이 의사였으므로 위화는 주민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 주러 다녔어요.
물자가 매우 부족했으므로 주사기 몇 개를 계속 소독해가며 사람들을 찔러댔고,
얇은 주사 바늘은 구부러져서 사람의 피부를 뚫기도 어렵거니와
뚫고 나올 때는 더 어려워서 구부러진 바늘 끝에는 사람의 살점이 달려 나오기 예사.
농민들은 인상이야 잔뜩 썼지만 항의는 고사하고 신음도 별로 없이 그 고통을 견뎠답니다.
주사란 원래 살점이 달려 나오는 것이거니~ 하면서 사람들을 찌르러 다니던 위화.
어느 날 그는 유아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고통에 솔직하니 당장에 유아원은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대성통곡으로 아수라장!
세상에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요.–;;;
위화는 식은땀을 흘리지만 그만 둘 수도 없어 그 고역을 다 겪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살펴보니 주사 바늘이 구부러졌고,
그러니 살점이 달려 나왔고, 그러니 아프겠구나, 를 깨달았대요.
그리고 위화는 밤마다 주사 바늘을 갈았죠.
주사 바늘이 짧아 못 쓰게 될 때까지.
그리고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답니다.
내가 왜 진작 이걸 깨닫지 못했을까?
이런 바늘을 쓰면 주사 맞는 사람이 아플 것은 뻔한 이치인데,
왜 유아원의 아수라장 이전에는 전혀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절대 무감했기 때문,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을 못 해 봤기 때문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거죠.
위화는 그때의 깨달음에 대해 이렇게 썼어요.
“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애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는 이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세상에는 왜 이렇게 불합리한 고통들이 많은지,
신은 왜 인간들의 고통을 허용하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것도 같았습니다.
‘울지마, 톤즈’ 에서 감동을 받은 이유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지구에서, 같은 시대를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줬기 때문이었어요.
그 전에도 아프리카의 고단함, 참상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원인이 하도 복잡하게 얽혀서 답이 안 보이기에
저 사람들은 대체 어쩌다가 저렇게까지 되었는지, 어쩌자는 건지,
사람이 저렇게까지 될 수도 있는 건지,,,,
이러면서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와 닿지 않았더랬죠.
그런데…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저도 위화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종하신 신부님을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며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았을 때,
그 깊은 상실감, 마음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위화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 깨달음으로 뭔가 큰 일은 하지 못해 유감이지만.ㅜㅜ
그래도 위화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할 수는 있었습니다.
신부님을 잃은 고통에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같은 인간으로 소통하는 느낌은
신부님이 왜 톤즈까지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발견했다고 기뻐했는지 알것 같더군요.
위화는 글을 썼고, 신부님은 톤즈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지구상에 또 누구는 음악을 만들고,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고,
누구는 불을 보고도 그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고, 누구는 환자의 대소변을 치우고,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
길은 다르지만 모두들 자기 안에 있는 타인의 고통과 소통을 했고,
또 자기의 그릇만큼 그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릇이 무한히 넓은 사람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기에
문제 많은 지구지만 또 이렇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