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던 해, 군대를 가기 전이었습니다. 간호학과에 진학했지만, 문득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능시험이 전부라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그것은 삶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방황하던 찰나 우연히 도서관에서 본 이태석 신부님의 책을 통해 알게 된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감동적이다’ 등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이 수단에서 보여주신 의료 봉사는 제가 앞으로 의료인으로서 걸어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사랑하고 공감해주며 낮은 자세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 저는 방황을 멈추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고 그렇게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저의 삶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길었던 군대 생활이 끝나고 학교에 진학하여 4년이라는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현실에 발맞춰 정신 없이 살아갔죠.
그러던 어느날, 직장생활 3년차가 되던 30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비롯해 3교대 근무인 간호사 생활이 힘들고 재미도 없어 앞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회의감도 많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그렇게 두번째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20살에 봤던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습니다. 30살이 되어 다시 보는데, 그만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특히 한센인을 치료하는 모습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동은 20살에 봤던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마음의 따뜻함과 충만함이 일어났습니다. 급변하고 가파른 현실 속에 갈피를 못 잡던 방황을 그때 다시 멈출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즈음 직장을 옮겼습니다. 저의 삶의 태도는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아픈 환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환자가 힘들게 하고 짜증을 내면 화가 나고 짜증이 일어나는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많이 힘들고 아파서 그러는구나’ 하고 먼저 손 내밀고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전보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환자와의 관계는 더 좋아졌고 제가 훨씬 더 감사함과 행복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술이나 능력 등 외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입니다. 그것이 신부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의 이 일이 저에게는 참 보람있고 뿌듯한 일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살아갔다면, 지금은 이 일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자부심도 많이 느낍니다.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보람과 뿌듯함이 저를 살아있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들며 감사하게 만듭니다. 방황하고 지칠 때마다, 이태석 신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저는 삶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한 인간으로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땅 톤즈에서 행동으로 보여주신 신부님의 사랑이 저의 삶의 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임을 신부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꿈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현재는 많이 미미하지만, 저의 재능과 능력과 재물이 아프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쓰여지면 좋겠습니다. 늘 신부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선후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