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슈쿠란바바』에 기고하려다 보니 제가 이웃들과 만나며 겪은 소소한 체험이 떠오릅니다. 요즘 접하는 뉴스 대부분이 답답하고 부정적인 소식이라 이 지면을 통해 따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글을 읽으시며 “이 세상 어딘가엔 남이야 알든 말든 착한 일 하는 사람”(박희진 시인의 시 ‘이 세상 어딘가엔’에서 인용)들이, 팍팍한 현실에서도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하며 잠시 미소를 지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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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활 시기에 세례를 받은 아내의 대녀 까르멜라 자매에게 올봄 이태석 신부님의 전기인 『신부 이태석』을 선물했습니다. 책을 받은 까르멜라 자매는 단숨에 책을 읽고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까르멜라 자매가 저에게 책을 선물받은 시기는 부군과 세 자녀가 부활 팔일 축제 기간 중 세례를 받은 직후였습니다.
며칠 후, 아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까르멜라가 당신이 준 책을 읽고 난 후 이태석 신부님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 인터넷에 서 검색을 하다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 마 톤즈’를 알게 돼 둘째 요한 보스코와 셋째 마리스텔라와 함께 보았대요. 신부님이 세상을 떠난 후를 담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슬픔에 겨워 눈물을 닦는데 가만히 보니 두 아이도 울고 있더래요. 어려도 다 아나 봐요.”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마리스텔라의 꿈은 알 수 없으나 두 살 위인 요한 보스코의 꿈은 ‘신부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 영화를 보고 난 후 더욱 그런 마음이 든 모양입니다. 아직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기에. 요한 보스코의 꿈이 이루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아침저녁, 이웃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부쩍 밝아진 모습으로 인사하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미소가 나눔이 되고 선물이 됨을 체감합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제가 빠뜨린 정보가 하나 있군요. 아이들 아버지 니콜라오의 대부는 바로 저입니다. 이들이 성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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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초가을날,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에서 아내를 만나 함께 귀가하는 길이었습니다. 승용차 안에서 보니 학교 앞 떡집 좌판에 놓인 가래떡이 먹음직해 보였습니다.
“가래떡 보니 시장기가 도네.”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했더니, 아내가 이내 차에서 내립니다. 유리창 너머로 가게 여주인과 아내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시 후 떡을 들고 차에 오른 아내가 말합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가래떡 몇 줄을 더 주었어요. 늘 이렇게 넉넉해요, 마음이.”
집으로 오는 도중,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하는데 아내가 말합니다. “세차하는 아저씨에게 가래떡 몇 줄 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기분 좋게 동의했습니다.
아내가 아저씨에게 떡을 들어 보이며 ‘흰떡 드실래요?’ 하니 처음엔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 만면에 미소가 서립니다. 동료들과 나눠 먹으면 맛보기에 불과한 양이지만, 장갑을 벗은 손에 가래떡 몇 줄을 들고 우리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행복한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선한 마음이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고리로 연결되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강조하신 ‘나눔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겠죠. 가난한 나라의 청소년들을 위해 전달된 우리의 작은 정성은 그들에게 도움이 됨은 물론, 우리에게도 행복을 안겨 줍니다. 그리고 나눔을 통해 싹튼 선한 마음은 또 다른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연대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신태흥 이사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