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고(故) 이태석 신부의 두 제자가 한국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토마스 타반 아콧(39)과 존 마옌 루벤(37)이 그들이다. 두 사람은 의학은 물론 한국어까지 배워야 해 남들보다 2~3배 더 공부했다고 한다. 전문의가 된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인술(仁術)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인제대학교 백병원은 23일 토마스와 존이 올해 치른 제67차 전문의 자격시험 합격자 2727명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토마스는 외과, 존은 내과 전문의가 됐다. 토마스는 상계백병원, 존은 부산백병원에서 전문의로 환자를 보고 있다. 전문의 합격자 발표가 난 지난 19일은 전공의 파업 하루 전이었다.
이 신부의 두 제자가 필수 의료인 외과·내과를 선택한 이유는 내전 이후 여전히 고통받는 남수단 사람들을 위함이라고 한다. 외과를 고른 토마스는 “남수단에는 외과 의사가 부족해 간단한 급성 충수염이나 담낭염도 빨리 수술받지 못해 죽는 사람이 많다”며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외과를 선택했다”고 했다. 내과를 선택한 존은 “어릴 때부터 내전을 치르는 데다 의사가 없는 환경에서 진료를 못 받아 고통을 겪는 이를 많이 봤다”며 “고향엔 말라리아, 결핵, 간염, 감염성 질환 등 내과 질환이 많아 내과를 골랐다”고 했다. 둘은 인제대 병원에서 전임의로 경험을 더 쌓은 뒤 수단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들과 이 신부의 인연은 지난 1999년 시작됐다. 이 신부는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사제의 길을 택했다. 신학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남수단에 선교 활동을 갔을 때 존을 만났다고 한다.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건 2001년이다. 이 신부는 이때부터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인 ‘톤즈’ 지역에서 병실 12개짜리 병원과 학교, 기숙사를 짓고 의료·선교 활동을 했다. 토마스는 이 신부의 미사 진행을 돕는 복사(服事)를 했다.
토마스와 존은 이태석 신부에게 “의사가 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신부가 진료할 때 보조하고 통역을 하기도 했다. 둘의 꿈을 눈여겨본 이 신부는 국내외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써 후원을 이끌어냈다. 토마스와 존은 이 신부가 설립한 ‘수단어린이장학회’의 도움으로 2009년 한국에 유학 왔다.
하지만 이 신부는 그 직후인 2010년 1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둘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에 도착한 첫 2년은 연세대 한국어학당 등에서 한국어 공부에 전념했다. 한국어능력시험 5급 자격증을 땄고, 2012년 둘이 함께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에 입학했다.
토마스와 존은 의학과 한국어를 함께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토마스는 “남수단과 교육 시스템이 달라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공부해야 했다”며 “국가시험에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쉬는 날인 토요일에도 공부했고, 한국어 공부까지 병행해야 해서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공부를 하다가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목표가 있으니 실망시키지 않고 무조건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결국은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다. 인제대는 둘에게 장학금으로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지원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8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했다. 졸업생 대표로 소감을 발표한 토마스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수단어린이장학회 등 여러 고마운 분께 정말 감사한다”며 “은혜를 갚는 훌륭한 의사가 돼 보답하겠다”고 했다. 존은 “어릴 때부터 간호사인 어머니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며 의사 국가시험 합격 의지를 보였다. 토마스는 인제대에 있는 이 신부 흉상에 학사모를 씌우기도 했다. 그는 “학사모를 씌워 드리고 신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나서 엄청 울었다”며 “‘이태석 신부님께서 계셨으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토마스는 2019년, 존은 2020년 각각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토마스와 존은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마친 후 각각 인제대 상계백병원 외과와 인제대 부산백병원 내과에서 레지던트로 수련했다. 전공의 과정을 마친 이들은 올해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의학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이태석 신부님 덕분”이라며 “전공의 수련에 어려움 없이 임할 수 있게 도와준 인제대 백병원에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남수단에 돌아가면 이 신부의 뜻을 이어 인술을 펼치는 후배 의사 양성에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조재현 기자,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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