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이태석 신부님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2010년, 이맘때로 기억합니다.
수원에 본원을 두고 있는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던 저에게 한 수사님께서 툭 던져준 책 한 권,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어나가다 가슴 한편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개봉된 신부님의 영화, <울지마 톤즈>.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하게 신부님을 처음 만나지 않았을까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부님을 이상하리만큼 가슴속에 품고 지내며 한 대학병원에 취업을 하였는데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어린 시절 국제기구들의 활동과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 분야의 꿈을 키워 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개발도상국에 의료 지원을 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곳에서 신부님을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던 한 의사 선생님께서 본인이 이태석 신부님 검진을 도왔고, 치료에 힘쓰셨다며 영화에도 나온다고 하시더군요. 분명히 영화를 봤는데…. 그래서 다시 한번 <울지마 톤즈>를 보니, 직속 상관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유병욱 교수님이 딱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세상 참 좁고 신기함을 느끼고 있던 중, 한 출장길에 유병욱 교수님이 아프리카 전문가라며 추천한 또 다른 의사가 바로 신경숙 교수님이었습니다.(그 덕분에 <울지마 톤즈>를 한 번 더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태석 신부님과 남수단에서 함께 봉사하셨던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구나.’
제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바쁜 삶을 살아오다, 2024년 여름에 신경숙 교수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용현 씨, 부탁이 있어요.”
장학회의 발전을 위해 함께 봉사해 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 고민하였지만, 신부님께 다 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장학회의 총회사원이 되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첫 회의에 참석하고 함께 미사를 드리던 순간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어색했지만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습니다. 신부님이 남겨놓으신 사랑을 제가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남수단 출장길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을 주로 가던 저였기에 출장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부님께서 활동하셨던 곳에 직접 간다는 흥분과 기대가 더욱 컸습니다. 출장 가는 날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울지마 톤즈>를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장소를 눈에 익히고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 내전 중이라 정세가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남수단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 사람 사는 곳이라서 그렇겠지요. 공항 직원들도 우리를 밝은 미소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만난 친구가 바로 싼티노 뎅이었습니다. ‘와, 싼티노다!’ 신부님이 떠나신 톤즈의 병원을 지키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그가 제 눈앞에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격한 환영의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살레시오 주바 공동체에 들어가 무거운 짐을 내리고 앞으로를 계획했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수도회 공동체 분들은 참 대단하십니다. 이 어려운 곳에 터를 잡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사람들이 평화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도록 함께 해 주시니까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풍족한 곳에서도 늘 만족하지 못한 채로 살고 있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톤즈는 왠지 모를 평온함과 집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는 모두가 이태석 신부님을 맞이하듯 환대해 주었고,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 한센인 마을의 가족들 그리고 외국인이 그저 신기한 아이들까지, 신부님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신부님을 추억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문득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에 오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남수단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생을 달리할 때까지 봉사할 수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신부님께서 외로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톤즈를 직접 보고 난 이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신부님은 외로울 틈이 없었을 것 같다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신부님과 함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신부님은 정말 그 자체로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저에게 다가와 주셨고, 저를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의 사랑을 제가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신부님께서는 “좋아!”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신부님은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를 남기어 우리 안에 존재해 계십니다. 또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가 있기 때문에 톤즈의 주민들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생각합니다.
새 세상이 다시 열리는 봄입니다. 씨앗에서 움트는 새싹과 같이 모두 올 한 해 힘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그리워하고 있을 남수단 톤즈를 위해 한 번씩 기도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김용현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총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