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집에서 만난 이태석 신부
신태흥 라우렌시오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
그동안 인사말 원고를 몇 번 쓰면서, 이태석 신부님의 나눔 정신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는 데에 부담감을 느낀 게 사실입니다. 장학회 후원자들이 주 독자이시니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이번엔 뭔가 다른 주제를 다루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발상을 하게 된 계기는 최근 출간한 『이태석 신부 서간집(이하 서간집)』을 수 차례 읽으며 이태석 신부님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그가 결성한 톤즈 브라스밴드의 뿌리에 대해 나누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한 이래 줄곧 책을 펴내는 일을 해왔고, 그중 4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까지 짧지 않은 기간을 살레시오회의 돈보스코미디어에서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쑥스러운 듯한 표정에 여린 미소를 머금고 편집실에 들르던 이태석 신부님을 몇 차례 만났습니다. 선교지 톤즈에서 잠시 휴가를 나오셨다가 톤즈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편집실을 방문하셨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우리의 대화는 선교지 이야기로 이어졌고, 못 다 나눈 이야기는 자연스레 원고 청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기고문이 후일 정본(定本) 전기 『신부 이태석』과 최근 펴낸 『서간집』 편찬에 매우 중요한 1차 사료로 쓰일 줄은 당시로선 알 턱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신부님과 편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 수도원에서 가까운 해물탕집을 함께 갔습니다.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힌 채 얼큰한 동태탕을 맛있게 드시는 신부님을 보니 짠하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서간집』에 실린 한 통의 편지를 읽다가 “이탈리아의 한 약물중독 회복 치료센터에서 실습을 했는데 그곳 젊은이들이 내가 매운 걸 좋아하는 걸 어찌 알았는지 말린 고추를 가져다주었다.”는 구절을 접했습니다. 느닷없이, 동태탕을 드시던 신부님 모습이 떠올랐지요.
생애 말년, 병마의 고통 속에서 영적 투쟁을 하며 후배 살레시오 회원과 주고받은 편지 전문도 『서간집』에 실려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예수님과 화해하는 그 장면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를 지닌, 인간적인 한계를 지녔으나 이를 인내와 의지로 극복해 가며 선교지의 가난한 청소년과 환우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다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님이 한결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서간집』에는 제법 많은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중 제 눈길을 끈 사진은 몇 장의 브라스밴드 사진이었습니다. 흔히 톤즈 브라스밴드의 결성이 이태석 신부님의 음악적 재능과 그의 창의적 기획에서 기인한 것으로 아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제가 이태석 신부님을 마음으로 기리며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살레시안의 DNA인 ‘살레시오 영성’으로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그 개인적인 재능을 온전히 봉헌해 톤즈 오라토리오를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래 네 장의 사진 속엔 세월을 초월해 매우 유사해 보이는 브라스밴드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살레시오회의 창립자인 성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께서는 “음악이 없는 오라토리오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돈 보스코 외의 다른 분들 모두 공교롭게도 살레시오회 선교사들입니다. 창립자가 유산으로 물려준 기쁨의 영성을, 선교지의 청소년들을 동반하면서 음악 안에서 같이 나누었던 것이지요.
이태석 신부님 개인을 존경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 신부님을 드러내는 일은 그가 오롯한 마음으로 걸어간 거룩한 여정에 우리 모두 함께하며 그의 뜻을 펼쳐 나갈 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이 길에, 좀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 브라스밴드와 함께한 돈 보스코와 살레시오회 선교 사제들 >




사진1. 성 요한 보스코(앞줄 중앙, 1815-1888): 살레시오회의 창립자
사진2. 복자 루이지 바리아라(맨 우측,1875-1923): 콜롬비아 한센병 환자촌에서 선교
사진3. 하느님의 종 카를로 브라가(앞줄 중앙, 1889-1971): 중국과 필리핀에서 선교
사진4. 이태석 신부(1962-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