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승 요한보스코 신부, 살레시오회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 가족 여러분께 성탄과 새해 인사로 소식을 전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기는, 우리 각자에게도 또 우리 장학회에도 참 중요한 시기입니다.
2025년 우리 장학회는 이태석 신부님의 선종 15주기를 추모하며 여러 추억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5월 24일 서간집 출판기념회와 ‘희망을 노래하는 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 6월 28-29일 신부님의 고향인 부산에서 열렸던 총회사원 워크숍, 10월 25일 회원의 날 행사 등 우리 회원들이 서로 더 잘 알고 가까워질 수 있는 행사가 많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새해에는 더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2026년 살레시오 가족생활지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기적을 이끌어내시는 성모님의 말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입니다.
이 성경 말씀이 잘 드러나는 어느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19세기 영국에 있는 대학교의 한 종교학 강의실은 무거운 침묵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날의 시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포도주’의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서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문제를 받아든 다른 학생들이 아주 길고 장황하게 답안지를 적어 내려가고 있는 동안 한 학생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장차 유명한 시인이 될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날 때쯤, 그제야 바이런은 단지 한 줄의 답을 적고 강의실을 떠났는데, 그의 답은 만점을 받아 그 대학의 전무후무한 전설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답은 바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도다(The water met its master and blushed).”
우리는 이태석 신부님의 어떤 모습에 붉게 물들었나요? 향기 나는 꽃에 벌과 나비가 모여들 듯 이태석 신부님이 뿜어내신 영성의 향기에 매력을 느껴 장학회 회원으로 살아가는 나는 신부님께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물들였는지 각자의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은 다른 이들의 곤란과 필요를 찾아내시는 섬세한 영적 감수성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성모님을 사랑하셨던 이태석 신부님은 성모님이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셨던 것처럼 수단의 어려운 상황을 알아채셨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신 성모님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용기 있게 실천하신 분이었습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바닥이 난 것처럼 우리 삶의 자리에도 결핍된 것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양식이 떨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시간은 부족하고, 삶의 의미와 활력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영적인 고갈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태석 신부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마음을 열고, 성모님과 함께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가오는 2026년, 새롭게 출발하는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모님께 여쭙고, 그 전구도 함께 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