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석 신부님 4주기 기념
끝나지 않는 그리움, 끝이 없는 연대
그리움에 머물지 않기
남수단에서 돌아와 만 1년이 지났습니다. 남수단 선교사제에서 한국 본당 신부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매일 눈감으면 떠오르는 남수단의 뜨거운 열기와 아이들의 눈망울을 삼키며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들어와 미사를 봉헌할 때 눈을 감으면 어느 순간 남수단에 있기도 했고, 한국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움이 사무칠 때 그리움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현실로 돌아올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곰곰이 이태석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하지만 남수단에서는 문밖을 나서면 늘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났을 때 내가 사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네 그랬습니다. 남수단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제들을 찾아오는 딩카 주민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들의 ‘가난’을 만나고 그들의 청과 부탁과 바람을 들어주고, 치료를 해주고, 약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일거리를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주어야 했고, 무엇인가를 마련해야 했고, 찾고 또 찾아 줄 것을 마련해 내야 했습니다. 때로는 그 ‘주어야 함’이 기쁨이요 보람이었지만, 끝없는 가난은 짓눌린 짐이 되었고 노동이 되었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사제로서 만난 그들의 가난은 저를 가슴 아프게도 했고, 땀흘려 일하게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분노케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함이 제 사제직의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아니 그들을 사랑해야 함이 저의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 보니 아프리카 대륙의 그 어떤 나라보다 잘 삽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또 다른 차원의 ‘가난’은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세상 어디를 가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오 25:45) 하신 주님의 말씀을 늘 상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실이 있는 곳은 아픔이 있고 사랑이 필요한 ‘현장’임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 현장을 찾아가지 않으면 가난한 이들도 아파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는 곳이 한국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 하겠다며 바쁘고 분주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풍요로웠지만 그로인해 행복해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남수단은 아득히 멀어 보였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이들에게 ‘인류애’를 이야기 하는 것은 늘 어색했고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나와 내 가족 살기도 바쁜데 가난한 이웃을 위한 ‘나눔’은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한 삶이 완료된 이후에나 가능해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