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공화국에 있는 살레시오센터 Don Bosco Ngangi의 도미니크신부님께서 한 학생과의 인터뷰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저희가 관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터뷰였는데요. 이 인터뷰를 통해서 Goma의 셀레시안 커뮤니티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미닉: 이름이 무엇인가요
아이: 제 이름은 Héritier Bujuma입니다.
저는 Bukavu에서 왔습니다.
강가근처에서 살았는데 어부들을 도와 그물을 고쳤습니다.
도미닉: Goma에는 어떻에 오게 되었나요?
아이: 긴 이야기인데요.
제 기억으로는 2007년에 저는 Bukavu 항구에서 일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처에 구호목적으로 온 군함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군함에 타고있던 군인 한명이 젤리가 들어있는 캔을 실수로 호수에 떨어뜨렸고,
그는 수영을 하지 못해 그 캔을 주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의 젤리캔을 주웠고 그에게 돌려주기 위해 떠나려하는 배를 탑승했습니다.
배가 넓어 그를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를 찾아 젤리캔을 주고 배에서 내리려했는데.
벌써 배는 항구를 떠난 후였고 저같은 어린 아이를 위해서 배를 돌릴 순 없었습니다.
그날 매우 저는 매우 슬펐고, 제가 도와줬던 군인을 찾아갔습니다.
다행히도 그가 절 받아주었고 저는 그의 하인으로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보호아래 영원히 살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느낌은 맞았습니다.
그는 Rusthuru에서 일어난 CNDP 반란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날 제 인생이 끝난듯한 기분이엇습니다.
도미닉: 어떻게 살아남았나요?
아이: 그 이후 Birere의 시장에서 생활했습니다. (거리생활)
도미닉: 그 사장에서 돈보스코 Ngangi로 들어가게 됐나요?
아이: 어느날 돈보스코 Ngangi소속 사회복지사가 거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보았고 거리를 떠나 Gahinga로 가자고 했습니다.
거리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에 저는 바로 그를 따라갔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군대에 들어가지만, 저는 어린나이였고 죽는게 두려웠습니다.
Mario 신부님이 Gahinga에 찾아오셨고 저를 데리고 Ngangi로 갔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전 그곳을 도망쳐 나왔고 다시 바로 돌아왔습니다.
도미닉: Ngangi에서 어떤일을 했나요?
아이: 처음 도착했을때는 알파뱃을 공부했습니다. 처음으로 쓰고 읽는걸 배우게되었지요.
그 다음에는 거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건축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자유시간에는 음악을 배우고 있습니다.
현재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았습니다.
도미닉: 몇살에 Ngangi에 도착했나요?
아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10살정도 인것 같습니다.
도미닉: 부모님에 대한 소식은 접하고 있나요?
아이: 공휴일에는 Bukavu로 돌아갑니다. 현재의 저를 따뜻하게 가족으로 맞아주십니다.
도미닉: 다른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나요?
아이: 거리에는 미래가 없으며 살아남으려면 나쁜일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약을 해 다른 이들을 해치거나 말이죠.
여전히 전쟁의 아픔속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약과 폭력에 노출되어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관심과 교육이 필요합니다.